11.2.09

[조선일보에 어떤 일이] 배용준 인터뷰 성공기-문화부 최승현 기자


[조선일보에 어떤 일이] 배용준 인터뷰 성공기-문화부 최승현 기자

배용준 인터뷰 성공기 [Old Interview]
2004/12/07 10:59:32

“저희는 인터뷰하지 않습니다. 방침이 그렇습니다”(6월)
“아~ 자꾸 연락주시는데요. 솔직히 저희 지금은 인터뷰할 시기가 아니라고 생각하거든요”(7월)
“하하 최 기자님, 지금은 비밀리에 추진 중인 게 있어서 아직 나설 때가 아닌데요. 음 그리고 다른 매체도 ‘푸쉬(Push)’하는 곳이 많은데 다 ‘노(No)’하고 있어요”(8월)
“인터뷰 하게 되면 조선일보와 가장 먼저 하겠습니다. 그건 보증합니다.”(9월)
“일단 서면으로 질문 좀 보내주세요. 인터뷰에 대해서는 아직 아무 말도 못 합니다.”(10월) 그리고 한달...
“18일 오후 6시 시간 괜찮으세요? 배용준씨가 차 한 잔 하잡니다. 결혼선물이 될까요?”(11월 16일)

이제는 저와 친밀한 사이가 된 BOF(배용준의 소속사) Y실장. 그의 입에서 나온, 지난 5개월여간의 배용준 인터뷰 관련 ‘어록’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어쨌든 조선일보와 가장 먼저 인터뷰하겠다”는 약속을 끄집어내는데 4달이 걸렸죠. 이후에도 ‘과연 올해 안에 인터뷰를 성공할 수 있을지’에 대해 3~4%쯤 되는, 실낱 같은 희망을 걸고 달라붙었는데 ‘꿈’은 절묘한 시기에 이뤄지더군요. 결혼 직전에... 신부 손 잡고 웨딩드레스·턱시도 가봉(假縫)하러 가서는 엉뚱하게 전화기 붙잡고 “이제 인터뷰 한번 합시다”라고 간청하는 기분 아십니까? 하지만 ‘욘사마’ 인터뷰 없이 신혼여행을 떠났다면 ‘지상낙원’ 몰디브의 연푸른 바다를 앞에 두고도 ‘님’의 까만 눈동자만 생각하며 한숨이 깊어졌을 것 같습니다. 돌아와서는 다시 ‘님’의 간택을 받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겠죠?
이번 일로 제가 얻은 교훈이 있다면, “10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가 즐비하지만 한 100번쯤 찍으면 대체로 넘어가준다”는 점입니다.



결혼식 사흘 전 이뤄진 배용준 인터뷰 직후의 기분은, 기자생활을 하며 과연 또 느낄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짜릿했습니다. 여러차례 식사·다과를 같이 하고 거의 매일 전화하며 Y실장과 서로 호감을 갖게 됐지만 인터뷰는 별개의 문제였습니다. 하지만 제가 결혼식을 올리는 그 주말 배용준이 6개월간 ‘몸만들기’를 마치고 사진집과 함께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낸다는 소식이 알려지며 전 극심한 위기의식에 시달릴 수 밖에 없었습니다. ‘판도라의 상자’가 열리기 전 ‘물건’을 만들어내지 못하면 그 가치는 ‘수직하강’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죠. 통화 빈도를 1일 3~4회로 상승시켰습니다.

“ ‘욘사마 인터뷰’ 없이 제가 결혼할 수 있겠냐?”는 ‘극언’까지 나왔죠. 뭔가 ‘여지’를 주는 듯한 그 목소리에 힘을 얻어 밀어붙였습니다. 그 와중에 16일 밤 모처럼 먼저 걸려온 인터뷰 수락 전화는 긴 가뭄 끝에 찾아온 단비였습니다.

이미 인터넷에 올린 ‘배용준 인터뷰 후기’에 자세히 썼지만 그와의 만남은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는 소탈하고 솔직했지만, 자신에 대해서는 냉철한 기준을 갖고 있었습니다. 당초 약속된 인터뷰 시간은 30분에 불과했지만, “저한테 궁금한게 그것밖에 없냐?”며 90여분의 인터뷰를 자청하는 그 모습에 당황하기도 했었죠. 역시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여전히 외롭다”고 말하는 당대 최고 스타의 ‘그늘’이었습니다.

기사의 반향은 꽤 컸던 것 같습니다. 전 기사가 나간 직후, 신혼여행을 떠나 알 길이 없었는데 귀국하자마자 실감하겠더군요. 휴대폰을 켜자 가장 먼저 걸려온 외부 전화는 “배용준 기사를 사겠다”는 일본의 잡지사 ‘월간현대’였습니다. 다음 날에는 한 일본 출판사 전화도 받았죠. 회사에 복귀해 듣기로는 배용준 인터뷰 기사가 나간 다음 날, 일본 도쿄신문과 방송·스포츠신문들이 그 내용을 모두 받았다고 합니다. 기내에서 일본 관광객들이 ‘조선일보’ 쟁탈전을 벌였다는 ‘풍문’도 들었습니다.

18일 밤 기사 작성 당시 밤을 새워가며 일본어 번역에 매진, 일본 독자의 요구에 부응한 디조 일문뉴스팀의 공도 컸습니다. 그 덕분에 최근 조선일보 인터넷 일문판 페이지뷰가 120만건으로 사상최고치를 경신했다고 하는군요.

그리고, 몸소 현장까지 ‘출동’해 전체 상황을 조율하며 완성도 높은 기사를 일궈내주신 박선이 문화부장, “나라 사랑”을 외치며 사진 촬영을 꺼려하던 취재원을 상대로 제대로 된 1면 사진 1컷을 만들어내신 사진부 김창종 선배, 안에서 빛이 나지 않는 수고스러운 일을 도맡아 주신 박은주 선배 등 많은 선배들의 노고에 큰 빚을 졌습니다./최승현 문화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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