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2007/08/24 09:12
우리나라 와인 열풍의 진원지로 꼽히는 일본 만화 《신의 물방울》. 2005년 11월 한국에 번역 출간돼 2007년 6월 말 현재 11권까지 나온 이 만화는 CEO와 직장인들의 필독서로 떠오르면서 밀리언셀러를 기록 중이다. 와인에 대한 지식 몇 마디 정도는 이야기할 줄 알아야 세련된 사람으로 인정될 정도.
《신의 물방울》의 작가 아기 다다시의 와인 세상을 엿보기 위해 한국 언론으로는 처음으로 그의 자택 겸 작업실을 찾았다. 히트 작품을 수없이 내놓은 인기 작가지만 일본에서도 그의 사생활은 베일에 가려져 있다. 아기 다다시는 한 사람이 아닌 두 사람. 10여 년 전부터 함께 일해 온 누나와 남동생의 공동 필명이다. 이들의 본명은 기바야시 신과 유코. 동생 기바야시 신(樹林 伸?4세)은 잡지 편집기자 출신이고, 누나 기바야시 유코(樹林 ゆう子?8세)는 잡지와 신문에 칼럼과 르포 기사를 게재하는 프리 저널리스트다. 이들이 함께 작업하는 집은 도쿄 기치조지(吉祥寺)의 한적한 주택가에 자리한, 옅은 분홍색 벽돌의 유럽풍 건물이었다. 지하 1층 지상 2층으로 5년 전 신축한 이 저택이 바로 《신의 물방울》을 뽑아내는 수원지다. 마치 유럽의 성(샤토)에 온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넉넉한 정문 현관, 그 안쪽으로 잔디로 곱게 단장된 정원이 나타난다. 정원 한켠에는 이제 서서히 포도색을 띠어 가는 블루베리가 익어 가고 있었다. 안경을 쓴 지적인 이미지의 누나, 머리를 깔끔하게 뒤로 동여맨 동생이 밝은 웃음으로 반긴다.
장마철인데도 구름 한 점 없이 쾌청한 날이었다. ‘피노 블랑(Pinot Blanc) 2004’를 마시며 정원에서 인터뷰를 하기로 했다. 인터뷰가 시작되자 질문할 틈도 없이 두 사람의 대화가 이어진다. 두 사람은 시종 장단이 잘 맞는다. 자리를 이동하는 도중에도, 와인잔을 고를 때도, 대화의 캐치볼은 끊임이 없다. 호흡이 너무 잘 맞는다고 감탄하자 누나는 “너무 가까워서 서로 존재감을 못 느껴요”라고 하고, 동생은 “흙놀이를 하며 어린 시절부터 같이 자란 남매잖아요. 노는 모습이나 방식도 꼭 닮았어요”라고 응대한다. 5분 거리에 사는 누나와 거의 매일 만나 함께 와인을 마시며 서로의 느낌을 이야기하고, 그 과정에서 스토리가 만들어진다. 동생이 초고를 쓰고, 누나가 확인한 후 만화를 그리는 오키모토 슈(41세)에게 건네진다. 만화가 그려진 다음 다시 원작과 이미지가 일치하는지 확인하는 과정. 그들은 끊임없는 대화를 통해 공동 집필을 한다고 말한다. 소설가, 각본가, 만화 원작자로 유명 인기 작가 반열에 오른 지 오래지만 일반 독자에게 남매의 얼굴이 공개된 적은 없다. 나이도 본명도 미공개. 장르별로 6개의 펜네임을 나누어 쓰다 보니 숱한 억측들이 난무한다. 신비주의자라 할 정도로 노출을 꺼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작가는 배우가 아니잖아요. 우리가 선글라스에 모자 차림으로 등장하는 이유는 프라이버시를 중시하기 때문이에요.”
동생은 여섯 편의 연재물과 소설 단행본 편집, 각종 취재와 미팅으로 일주일 내내 쉬는 날이 없다. 바쁘기는 누나도 마찬가지. 공동 연재 세 편에 칼럼 두 편, 게다가 르포 취재까지 한다. 동생은 2남 1녀를 둔 세 아이의 아빠고 누나는 9세와 6세 두 딸을 키우는 엄마. “어렸을 때 너무 잘 놀아 지금의 상상력과 언어 감각이 만들어졌다”는 남매는 어린 시절 학원 근처에도 가본 적 없는, 공부를 싫어하는 아이들이었다고 한다.
“책 읽고 음악 듣다가, 밖에 나가서 하루 종일 흙장난을 하며 해 질 녘까지 놀았어요. 그때 대지의 따스함을 느낄 수 있었기에 천(天)겵?地)겴?人)의 조화로 빚어낸 와인의 세계를 가슴으로 느낄 수 있게 된 것이 아닌가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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